끊이지 않는 회사기회 유용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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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9.05.07   


얼마 전 21개 재벌그룹의 총수일가 71명이 회사기회유용으로 총 3조 원의 이득을 얻었다는 경제개혁연구소의 발표가 있었다. 회사기회 유용이란 회사의 이사, 임원 또는 지배주주 등이 회사가 수행해야 할 사업기회를 개인적 이익을 위해 가로채는 것을 뜻하며, 미국에서는 이를 ‘회사기회 이론(Corporate Opportunity Doctrine)’이라는 법원칙에 의해 규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콜라판매 회사의 이사는 업무 도중 콜라제조 회사를 인수할 기회를 알게 되더라도,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에 알리지 않고 콜라제조 회사를 개인적으로 인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콜라판매 회사의 이사가 이를 위반하여 콜라제조 회사를 개인적으로 인수한다면, 법원은 콜라제조 회사 인수를 통하여 얻은 이익 전부를 콜라판매 회사에게 반환하도록 명할 수 있다. 이러한 법리가 인정되는 이유는, 이사나 지배주주가 회사의 사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망한 사업기회를 가로채는 것은 장래 회사와 회사의 주주들에게 귀속될 이익을 가로채는 것으로서 일종의 배신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100년 전인 1900년에 이미 알라바마 주 대법원에 의해 이와 같은 법원칙이 받아들여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근에 회사기회 유용의혹이 제기된 것은 OCI 이수영 회장에 의한 넥솔론의 설립이었다. OCI는 태양광 발전의 첫 단계인 폴리실리콘을 생산하는 업체이고, 넥솔론은 폴리실리콘을 원재료로 한 웨이퍼를 생산하는 회사이다. OCI가 폴리실리콘의 상업적 생산에 성공했기 때문에 웨이퍼 생산업체인 넥솔론은 설립 당시부터 사업전망이 매우 밝았다. 따라서 만약 OCI가 웨이퍼 생산업체인 넥솔론을 자회사로 둘 경우 OCI는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넥솔론은 OCI의 자회사가 아닌 이수영 회장의 장남과 차남의 지분 출자방식으로 설립되었고, OCI와 폴리실리콘 공급계약을 맺은 넥솔론은 그 후 예상대로 급속하게 성장하게 된다. 결국 이수영 회장 일가는 OCI의 사업기회를 유용함으로써 OCI 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가로챈 셈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회사기회 유용이 특히 문제되는 것은 회사기회 유용이 재벌들의 경영권 승계수단이나, 재벌총수의 비자금 확보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글로비스를 통해 수천억 원 대의 평가이익을 거둔 정몽구, 정의선 씨가 회사기회를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 밖에 SK 최태원 회장,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한화 김승연 회장이 마찬가지의 의혹을 받았다. 그러나 2007년 회사기회유용 금지를 담은 상법개정안은 재계의 반대에 부딪혀 통과되지 못하였고, 18대 국회에서도 새로운 개정안이 제출되었으나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회사기회 유용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회사의 사업기회 역시 엄연히 회사의 잠재적 재산이요, 이익이므로 이를 가로채는 것은 회사와 주주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손해를 입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회사기회 유용은 굳이 입법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현행 상법 제382조의 3에서 규정하고 있는 이사의 충실의무에 위반되는 행위이다. 또한 학계에서도 별도의 입법 없이 이사의 충실의무에 관한 조항으로도 회사기회 유용을 규제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사가 아니면서도 재벌그룹의 지배주주의 지위에서 회사기회를 유용하는 경우 역시 상법 제401조의 2에 의해 업무집행지시자로서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회사기회 유용금지 원칙이 미국에서 인정된 지 가 이미 100년이 넘었는데, 이제는 우리도 한번쯤 법적인 문제제기를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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