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소송을 계기로 본 집단적 소비자 피해구제 제도의 문제점

지난 2018. 3. 아이폰 고객 63,767명은 애플 본사 및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8가합2078호 사건). 한국 소비자소송 역사상 단일 소송으로는 최대의 인원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손해배상청구 소송이다. 이 소송이 제기된 지도 일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나 현재까지 단 한차례의 변론기일도 진행되지 못했다. 소송의 진행이 이례적으로 늦어진 것은 소제기 이후 미국에 소재한 애플 본사에 대한 국외 송달 절차에 수 개월의 시간이 소요되고, 애플 본사와 애플코리아가 소 제기 이후 7개월 여가 지나서야 비로소 답변서를 제출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63,000명이 넘는 원고가 집단소송이 아닌 공동소송의 형태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1년 여의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앞으로도 아이폰 소송의 신속한 진행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2019. 1. 24. 이 사건의 첫번째 변론기일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변론기일을 앞두고 법원 전자소송시스템이 마비되는 문제가 있었다. 담당재판부인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1민사부는 ‘사건분리를 위하여’ 이 사건의 기일을 추후지정 하겠다고 통지했다. 향후에는 전자소송 시스템상 수용 가능한 적정 원고수를 기준으로 10여개 이상의 사건으로 분리되어 심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애플 측은 2019. 1. 21. 구석명 신청서를 제출하여 63,000명이 넘는 원고들 모두의 기기 모델, 일련번호, 구입시점, 구입처, 사용기간, 구입 당시 ios별 업데이트 내역, 구체적인 불편 내역, 배터리 교체 여부, 수리 내역 등을 입증방법과 함께 밝힐 것을 요구했다. 피고의 구석명내용에 대한 공방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아이폰 소송을 집단소송으로 제기했다면?
만약 아이폰 소송을 집단소송의 형태로 제기할 수 있었다면 달랐을까. 먼저, 집단소송제도 하에서는 피해자들 중 단 1명만이라도 전체 피해자를 대표하여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므로 6만 명 이상의 원고가 아닌 1명 또는 수 명의 대표당사자가 소송을 제기하였을 것이다. 당사자의 수가 수 명에 불과하므로, 법원 전자소송시스템상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원고 수에 따라 사건을 쪼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법원은 전체 피해자의 손해를 통계적, 표본적 방법으로 산정하고, 피해자집단이 승소하면 소정의 권리확인절차를 거쳐 배상금을 분배하게 된다. 재판 진행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일일이 증빙서류를 제출할 필요가 없고, 재판부도 이를 하나하나 심리할 부담이 없었을 것이다. 수만 명의 당사자가 직접 원고가 되어 소송을 진행하면서 발생하고 있는 법원 시스템상 절차 및 운영상의 난점, 피해자들의 개별적 입증의 곤란, 재판부의 심리의 부담가중 등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므로, 손해배상책임의 존부 및 그 범위에 대한 실체적인 심리가 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제2의 아이폰 소송 피해자들은 집단소송제도에 따른 구제를 받을 수 있을까
법무부는 지난 해 9월 21일 기존의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의 법안명을 ‘집단소송법’으로 바꾸고, 집단소송의 대상분야를 대폭 확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집단소송법 개정안(의안번호 2015727호 김종민의원 등 18인 제안, 이하 ‘법무부 개정안’이라 한다)을 제출했다. 법무부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집단소송의 적용범위는 기존 증권관련 분야에서 제조물책임, 부당공동행위・재판매가격 유지행위, 부당한 표시・광고행위, 개인정보침해행위, 식품안전 분야, 금융소비자 보호 분야로 확대된다. (→【법·제도동향】 법무부가 추진하는 집단소송법 개정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
그러나 개정안에 의하더라도 아이폰 소송을 집단소송으로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이폰 소송은 애플 측의 결함있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배포를 통해 피해자들이 보유한 아이폰 자체가 손상을 입은 것에 대한 불법행위책임 내지 계약책임을 묻는 소송인데, 법무부 개정안에 집단소송의 대상으로 규정된 제조물 책임은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신체 또는 다른 재산에 손해를 입힌 경우에 한정되는 것이고, 제조물 자체의 가치하락에 따른 손해에 대한 일반 불법행위책임이나 계약상 책임을 묻는 경우는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개인정보침해행위에 대한 정보통신망법상 손해배상청구에는 집단소송이 적용되나, 정보통신망 침해행위 등에 대해서는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한편, 현행 소비자기본법은 사업자가 소비자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에 대한 권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하고 그 침해가 계속되는 경우 소비자단체가 법원에 소비자권익침해행위의 금지, 중지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단체소송 제도를 두고 있다. 그러나 단체는 침해행위의 금지, 중지를 구할 수 있을 뿐, 소비자들이 입은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으므로, 아이폰 소송처럼 사업자의 침해행위는 이미 중지되었으나 이로 인한 소비자들의 손해의 회복을 구하여야 하는 사건에서는 실효적인 권리구제 수단이 되기 어렵다. 결국 추후 아이폰 소송과 같은 소송이 다시 제기되더라도, (개정) 집단소송법이나 소비자보호법상 단체소송에 따른 구제를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적어도 소비자 피해 분야에서는 집단소송제가 포괄적으로 확대 적용되어야
소비자 피해의 가장 큰 특성은 다수의 소비자가 소액의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법제하에서 개별 소비자들은 직접 소송을 제기하여야만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으므로, 피해 회복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소송을 제기하기 보다는 청구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소액다수의 피해를 보호하기 위한 소비자 소송에서는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할 때, 집단소송의 적용범위를 적어도 소비자 피해 분야에서는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구체적으로, 집단소송의 범위를 ‘소비자계약과 관련하여 또는 사업자가 제공하는 재화 등으로 다수의 소비자에게 피해가 발생하거나 다수의 소비자가 사업자로부터 채무의 이행을 청구받은 경우’와 같이 소비자 피해 분야 일반으로 확장시켜, 사업자가 제공하는 재화 등으로 발생한 소비자의 모든 피해에 집단소송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그 범위를 더욱 확대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구현주 변호사 hjku@hnr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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