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가 승인한 소비자 집단소송지침의 내용과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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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0.12.03   


89aac939248abadabd3581d7040e9cba_1606968126_3328.jpg유럽의회, 소비자를 위한 대표소송 지침 승인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는 지난 11월 24일 적격단체들이 기업의 불법행위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 집단을 대표하여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대표소송 지침(The Representative Action Directive)을 승인했다. 이번 지침은 유럽연합(EU)의 관보(Official Journal)에 게시된 날로부터 20일이 지난 시점에 발효되는데 27개 EU 회원국들은 발효일로부터 2년 이내에 이 지침에 따른 국내법을 제정해야 하며 이후 6개월 이내에 법을 시행해야 한다. EU 집행위원회는 2018년 폭스바겐이 경유 배기가스 배출량을 조작한 ‘디젤게이트’ 당시 폭스바겐과 미국 피해자들이 합의한 수준의 배상금을 유럽 소비자들이 청구하지 못하자 이 같은 지침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2018년 4월 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지침안에 2020년 6월 유럽의회 협상자들과 EU 각료들이 합의했는데 이 지침안이 이번에 유럽의회를 통과한 것이다. 물론 유럽의 몇몇 나라들은 이미 소비자 집단소송제도를 갖고 있지만 이번 지침을 계기로 EU의 모든 회원국들은 소비자를 위한 집단소송절차를 적어도 한 가지는 갖추어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다.

 

유럽 소비자 대표소송제도의 주요 내용과 우리 법무부가 추진하는 집단소송제와의 차이점

 

우리나라의 경우 법무부가 일반 집단소송법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유럽 소비자 대표소송제의 주요내용을 살펴보면서, 우리나라가 추진하고 있는 집단소송제와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1. EU 지침의 성격

 

우선 유념해야 할 것은 이번 지침이 각 EU 회원국이 소비자를 위해 갖추어야 할 최소한 한 가지의 집단소송절차에 관한 지침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회원국들이 각국 차원에서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집단적 분쟁해결절차를 마련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이 지침은 소비자단체와 같은 적격단체에 의한 대표소송을 마련하도록 하는 것인데 각 회원국은 소비자들이나 소비자단체들이 직접 미국식 집단소송이나 단체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를 가질 수 있으며 이럴 경우 소비자단체는 이 지침에 따른 대표소송은 물론 자국법에 따른 단체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2. 대표당사자 적격

 

EU 지침에 따른 대표소송제는 피해자가 아닌 적격단체에게 피해자 집단을 대표할 적격을 부여하고 있다. 이 점에서 피해자 중 1인 또는 수인에게 피해자 집단을 대표할 적격을 부여하는 우리 집단소송제와 가장 큰 차이가 있다. EU 지침의 취지는 피해자를 대리하는 로펌이 소송을 주도하기보다는 공공성을 갖춘 소비자단체 등이 주도하도록 하는 취지인데, 원고를 대리하는 로펌과 피해자집단간에 발생할 수 있는 이익충돌문제나 대리인문제가 적격단체와 피해자집단간에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 결국 적격단체도 다국적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기 위해서는 전문 로펌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과연 어떤 것이 피해자 집단의 이익을 가장 효과적으로 대변하고 남소를 예방하는데 효과적일지는 미지수이다.

 

3. 적용 분야 및 구제수단

 

EU지침에 따른 대표소송제는 소비자 분야의 집단분쟁에만 적용된다는 점에서 꼭 소비자가 아니더라도 지역주민 등 공통의 이익을 가진 다수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 제기할 수 있는 우리 집단소송제와 차이가 난다. 하지만 EU지침에 따른 소비자 분야의 범주에는 데이터보호, 금융․투자 서비스, 여행․관광, 에너지 및 통신과 같은 분야 등이 모두 포함된다는 점에서 역시 그 대상범위가 매우 포괄적이라고 볼 수 있다. EU지침에 따른 대표소송제는 피해자 집단 전체를 위한 사전금지청구(Injunction)뿐만 아니라 사후적인 피해구제조치(redress)를 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러한 피해구제 조치에는 보상, 수리, 교환, 대금감액, 계약해제, 환불과 같은 다양한 구제수단이 포함된다. 이는 우리 집단소송법안이 오로지 손해배상청구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대비가 된다.

 

4. 참여방식 (Opt-in / Opt-out)

 

우리나라 집단소송법안은 피해자 집단의 구성원 중 명시적으로 제외신고를 하지 아니함으로써 묵시적으로 소송에 참여할 의사를 표현한 구성원들 전체에게 판결의 효력이 미치는 소위 Opt-out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EU지침에 따른 대표소송제는 피해자들이 별도의 소송을 제기하지 않더라도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되, 명시적으로 또는 묵시적으로 소송에 참여할 것인지를 표시할 기회를 부여하도록 함으로써 Opt-in 방식이나 Opt-out 방식 중 어느 하나를 취하거나 둘 다 가능하도록 재량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5. 증거개시제도, 패소자 소송비용부담원칙

 

EU지침은 남소를 방지하기 위해 소송비용의 패소자 부담원칙을 도입하도록 하고 있으며 피해집단구성원들은 원칙적으로 소송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소송비용의 패소자 부담원칙이 도입되어 있고 역시 피해집단구성원 개개인의 소송비용 부담의무는 없으므로 이 점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EU지침은 각 회원국이 대표소송의 수행에 필요한 증거를 상대방 당사자 또는 제3자로부터 확보할 수 있는 일종의 증거개시제도를 도입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점은 한국형 증거개시제도를 포함하는 우리 집단소송법안과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이번 지침에 따라 EU 각국은 향후 2년 이내에 피해를 입은 소비자집단 전체의 피해를 일괄적으로 구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이며 유럽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에 속히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기업들로 하여금 글로벌한 환경하에서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고, 우리 소비자들이 다른 나라의 소비자들에게 비해 역차별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집단적 분쟁해결절차의 도입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아니될 것으로 보인다.

 

【김주영 변호사 jykim@hnr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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