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법원, 신용등급 과대평가한 S&P에 투자자 손실 전액 배상판결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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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4.06.20   


신용평가를 잘못 하였더라도 이를 투자자들이 입은 손실과 연관지을 수 없다는 신용평가회사들의 항변에 찬물을 끼얹는 판결이 호주에서 내려졌다. 지난 6. 6.자 블룸버그 통신에 의하면, 호주 연방항소법원은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 중 하나인 S&P가 부실금융상품에 과도하게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해 투자자들을 오도하였다는 이유로 1심에 이어 재차 투자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이번 판결은 금융상품에 투자한 뒤 손실을 본 투자자들에 대하여 신용평가회사에 책임을 물린 세계 최초의 사례에 해당한다.

문제가 된 금융상품은 2006. 4월 경 네덜란드계 은행 ABN 암로(ABN Amro, 현재 RBC 은행에 합병됨)가 출시한 CPDO(constant proportion debt obligation, 고정비율부채증권) 상품인데, CPDO란 상품은 그 성과를 CDS 지수에 연동시키는 복잡한 파생금융상품의 일종으로서 1심 판사가 묘사하기를 ‘도박에서 연달아 손실을 입은 뒤 그동안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판돈을 높이는 전략’과 유사하다고 할 만큼 레버리지 비율이 높은 상품이었다.

LGFS(Local Government Financial Services)는 2006년 ABN 암로가 출시한 램브란트(Rembrandt) 2006-2 및 2006-3이라는 CPDO 상품을 연이어 인수한 뒤 이를 호주의 뉴 사우스 웨일즈(New South Wales) 주 13개 지역행정기관에 판매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ABN 암로는 S&P를 CPDO 상품에 대한 신용평가회사로 지명하였다. S&P는 당해 상품들의 안정성이 극도로 강하고(extremely strong) 부도 위험이 0.728% 보다 낮다고 평가하며 최고등급인 AAA를 부여하였다. 지역행정기관으로서 안전자산 위주로 투자해온 투자자들은 부도 위험이 거의 없다고 평가된 AAA 등급의 CPDO 상품에 1천6백만 호주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투자하였다.

그런데, 2007년부터 전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CPDO 상품의 가치가 폭락하여,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금액의 90% 이상을 잃게 되었고, 결국, 투자자들은 LGFS, ABN 암로 및 S&P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1심 법원은 2012. 11월 투자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는데 이번에 항소법원도 투자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본 소송에서 투자자들은 회사법(Corporations Act) 및 증권투자위원회법(Securities and Investments Commission Act) 상 특정조항의 위반을 문제 삼기도 했지만, 영미 보통법(common law)상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negligence)를 청구원인으로 삼았고, 이러한 주장을 1심에 이어 항소법원 역시 인용했다는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보통법상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를 문제삼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S&P가 투자자들에게 일정한 의무를 지고 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항소법원은 S&P가 자신이 표명하는 신용등급이 합리적 주의의무(reasonable care) 없이 부여되었을 경우 CPDO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예견가능하였다는(foreseeable) 이유로 S&P가 투자자들에 대하여 합리적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있다고 설시하였다.

또한, S&P가 신용등급을 평가하면서 자신이 개발한 모델이 아니라 ABN 암로가 제공한 오류투성이의 모델을 사용했다거나, 부도 위험(default risk)을 잘못 평가했다거나, ABN 암로가 제공한 잘못된 변동성 수치(volatility figure)를 확인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적용했다거나, 모델 리스크(model risk)를 고려하지 않았다거나 등 여러 단계에 걸쳐 최소한의 주의의무 조차 게을리 하였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항소법원은 472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판결문을 통해 S&P를 비롯하여 ABN 암로 및 LGFS의 잘못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이들 피고에 대하여 투자자들이 입은 손실액 전부에 대하여 배상판결을 내린 1심 판결을 그대로 인용하였다.

그동안 S&P와 같은 신용평가회사들은 자신들이 금융 상품 발행자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대가로 매겨준 신용 등급이 복잡다단한 금융 자산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하나의 ‘의견’에 불과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손실과 연결짓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일례로, 본 소송과 유사한 사안에서 CalPERS(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기금)가 제기한 소송에서 S&P 및 Moody’s는 신용등급을 손해배상과 연결짓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 헌법 제1조에 위배된다거나 심지어 anti-SLAPP(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공적이슈에 대한 비판 활동을 봉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기되는 소송이 남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법)의 적용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신용등급 부여를 손해배상책임과 단절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 소송에서 캘리포니아 항소법원은 지난 5. 23. S&P 및 Moody’s의 주장을 배척하고, 호주 소송에서와 유사하게 negligence misrepresentation(과실에 의한 허위표시)에 대한 투자자들의 주장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최근에 미 법무부가 S&P 등을 상대로 50억 달러에 이르는 소송을 제기하였고, 유럽에서도 16개 유럽 기관투자자들이 암스테르담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등 여러 신용평가사들이 크고 작은 소송에 휘말려 있는 상황에서, 호주 항소법원이 S&P에 대하여 보통법상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를 인정한 것은 그 여파가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2005년 판매된 우리파워인컴펀드를 비롯하여 과대포장된 신용등급으로 말미암아 위험한 상품이 안전한 상품으로 둔갑하여 판매된 사례가 적지 않았음을 고려할 때 향후 신용평가사의 배상책임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 다만 지난 2. 14. 서울중앙지법은 투자자들이 부산저축은행과 회계법인, 금융감독원, 신용평가사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저축은행과 회계법인의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금융감독원과 신용평가회사에 대한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하였다. 이는 우리 법원이 금융스캔들과 관련하여 감독기관 등의 책임을 묻는데 인색한 종전의 경향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서 향후 금융스캔들과 관련하여 신용평가기관의 책임을 추궁하려는 작업이 여전히 험난할 것임을 보여준다.

【김성훈 회계사 shkim@yir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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