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증권, 파생상품 기초자산의 시세조종 유죄판결에도 불구하고 민사 배상책임 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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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4.10.14   


대한전선이 장 마감직전 콜옵션의 기초자산 매수주문을 쏟아내는 시세조종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도이치증권 등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의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지난 9월 19일 서울고법 민사10부는 대한전선이 “시세조종으로 인한 피해를 배상하라”며 도이치증권과 도이치은행을 상대로 낸 10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

대한전선은 2003년 4월 도이치은행에 한미은행 주식 285만여주를 주당 7,930원에 팔면서 한미은행 주가가 2003년 6월27일부터 1년 동안 1만5,784원 미만이면 원래 가격대로 되살 수 있는 콜옵션 계약을 했다. 대신 같은 기간내 주가(종가)가 하루라도 1만5,784원 이상이 되면 대한전선은 콜옵션 행사를 할 수 없다는 녹아웃 조건을 맺었다. 즉 주가가 1년동안 1만5,784원 미만을 유지하면 대한전선은 한미은행 주식 285만주를 7,930원에 되살 수 있다. 이 경우 2004년 당시 1만 5,000원대 주식을 절반 수준에 매입할 수 있어 약 200억원가량의 차익을 볼 수 있게 된다. 반면 도이치은행은 200억원대 손실을 입는다. 이듬해 2월19일 한미은행 주가가 1만5,800원 선에서 등락을 거듭하자 도이치증권의 직원은 한미은행의 종가를 1만 5,784원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장 마감 직전 93만여주를 대량매수주문하는 등 시세를 조종해서 종가를 1만 5,800원으로 형성시켰다. 이러한 시세조종에 대해서는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 날인 2월 20일에도 한미은행의 종가가 1만 5,800원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2월 20일에도 도이츠증권 직원은 한미은행의 주식을 27만주 이상 매수하였으나 이에 관하여는 시세조종으로 기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도이치증권은 20일 매수한 27만여주 중 약 63%에 해당하는 16만9000여주를 1만5800원 이하의 가격으로 매수”했으며 “도이치증권으로서는 19일 이미 녹아웃 조건으로 성취됐기 때문에 더이상 녹아웃 가격인 1만5800원 이상이 되게 인위적으로 종가를 조작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즉 민사재판부는 2월 19일 시세조종이 없어서 녹아웃 조건이 성취되지 못하였더라도 2월 20일에는 어차피 성취되었고 2월 20일의 대량매수가 시세조종이라는 증거가 불충분하므로 손해인과관계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항소심판결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한미은행 콜옵션을 둘러싼 도이치은행과 대한전선과의 이해상충이 명백하고, 녹아웃조건의 성취를 둘러싼 공방이 노골적이었던 상황에서 도이치증권 입장에서는 좀 더 확실하게 문제를 처리고 사후에 제기될 문제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 2월 19일에 이어 2월 20일에도 녹아웃조건을 충족시키려 대량매수거래했을 개연성이 크다고도 볼 수 있으며, 설령 1만 5,800원 이하의 매수가 많더라도 이것이 1만 5,800원 초과 매수지분과 더불어 1만 5,800원에 종가가 형성되는데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도이치증권은 대한전선과는 달리 자본시장법상 신의성실의무를 부담하는 금융투자업자에 해당한다. 비록 시세조종으로 책임을 묻기에는 부족하다 하더라도 이해상충상황에서 2월 19일에 시세조종을 한 도이치증권이 그 다음 날에도 대량매수주문을 하여 가까스로 녹아웃조건이 성취되었다면 이는 신의칙에 반하여 조건의 성취를 유도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파생상품 기초자산의 시세조종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사상 배상책임을 전혀지지 않게 된 이번 판결이 우리나라 파생상품시장을 한층 더,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장으로 만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김주영 변호사 jykim@hannuri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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