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지와 투기, 그 미묘한 경계, 그리고 볼커 룰
1930년대 이후 미국에서 가장 큰 금융개혁이라고 불리는 오바마 행정부의 도드 프랭크법(Dodd-Frank Act), 그 중에서도 핵심조항이라 할 수 있는 제619조, 일명 볼커 룰(Volcker Rule)의 시행규칙 최종안이 2013. 12. 10. 긴 진통 끝에 의결되었다. 2010. 1. FRB 의장이었던 폴 볼커가 은행의 투기적 자기자본거래를 규제할 목적으로 제안한지 근 4년 만이다. 최종안 선정과정에서 무려 18,000건이 넘는 코멘트들이 제출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볼커 룰에 집중된 관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가히 짐작할만하다.
도드 프랭크법 제619조는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은행이 자기자본거래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기자본거래(proprietary trading)란 금융사가 자기자본이나 차입금을 활용해 파생상품 등을 포함한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예금이나 대출과 같은 단순한 업무보다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손실 위험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주요 영업전략으로 자리잡았다. (2009. 말 기준 대형은행들의 순 운영수익 거의 전부가 거래수익으로부터 발생하였다고 한다).
문제는 볼커 룰이 자기자본거래 중에서 투기적 성격을 가진 자기자본거래와 비투기적 성격을 가진 자기자본거래를 구분하고, 비투기적 자기자본거래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자기자본거래를 투기적 거래와 비투기적 거래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가? 일견 고위험 고수익의 투기적 목적을 가진 거래와 투기적 목적이 아닌 다른 건전한 목적(유동성 공급 또는 헷지 등)을 가진 거래는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2012. 5. 10. 미국 최대의 은행인 JP 모건이 파생상품거래로 인해 20억불의 손실을 인식했다고 발표했다. 결산 즈음해서 실제 손실은 그 3배가 넘는 62억불로 불어나 있었고 이를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7조원 규모이다. 이른 바 2012년 전 세계 금융가를 발칵 뒤집은 런던고래사건이다. JP 모건이 이처럼 대규모 손실을 낸 배경에는 신용파생상품에의 투자가 자리잡고 있다.
런던고래 또는 볼드모트로 불리는 부르노 익실(Bruno Iksil)이 있던 최고투자운용부서(Chief Investment Office, CIO)는 2008년부터 합성신용포트폴리오(Synthetic Credit Portfolio, SCP)를 구성하여 운용하기 시작하였는데, SCP는 신용부도스왑(Credit Default Swap, CDS)과 같은 신용파생상품에 대한 매수와 매도 포지션을 동시에 취하면서 위험관리를 하는 포트폴리오로 이해될 수 있다. 2008년 40억불 규모로 시작된 SCP는 이익이 나면서 그 규모를 점차 확대하게 되고, 결국 사건이 발생한 2012. 1분기에 이르러서는 1,570억불(170조원 상당)까지 성장하게 된다.
사실 런던고래 사건에서 문제가 된 SCP의 초기 승인서류를 보면 그 주요 목적이 헷지임을 가리키고 있고, JP 모건의 CEO 역시 의회 청문회에서 SCP의 기본 목적은 헷지임을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CP로부터 이익이 발생하면서 부르노 익실을 포함한 CIO의 트레이더들은 SCP의 본래 목적과 상관없이 한 방향에 대하여 대규모 베팅을 감행함으로써 전형적인 투기적 거래의 모습을 보이게 되고, 시장이 베팅한 방향과 다르게 흘러가 결국 대규모 손실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본래 헷지목적에서 시작된 거래가 변질되어 투기적 거래로 바뀌는 사례는 굳이 런던고래 사건을 들지 않더라도 비일비재하다. 개념상으로 볼 때도, 은행이 다양한 금융상품을 포트폴리오화 하여 분산 투자한다고 할 때, 분산 투자를 통해 위험회피를 추구하는 측면에서는 헷지목적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다른 측면에서 분산된 투자 개별적으로는 초과이윤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투기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헷지거래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시장조성을 위한 유동성 공급의 경우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ABUSCUS란 합성부채담보부증권(Synthetic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CDO) 거래에서, 골드만 삭스는 매도 포지션을 취하고자 하는 고객을 위하여 상품을 개발하는 한편 다른 고객에게는 매수 포지션을 취할 것을 권고하고 동시에 자신이 직접 대규모 매도 포지션을 취하여 논란이 된 바 있는데, 당해 거래에서 골드만 삭스는 본래 유동성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즉, 효율적 시장 조성을 위하여 매도자와 매수자 사이를 매개하는 시장조성 행위 역시 쉽게 고수익을 따르는 투기적 거래로 변질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투기적 거래와 비투기적 거래를 구분하는 것은 마치 무지개의 각 색깔이 각 양 극단에서는 구분이 쉬운데 반해 경계에 가까울수록 구분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수년 간 금융당국과 월 스트리트로 대변되는 금융계가 볼커 룰의 최종안을 둘러싸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였던 것도 바로 이와 같이 본질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두 유형의 거래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그리고 그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볼커 룰은 투기적 거래와 비투기적 거래를 구분함에 있어 “중요한 이해상충관계”가 존재하는지 확인할 것을 요구한다. 즉, 은행이 자기자본거래를 함에 있어 고객이나 거래상대방과 중요한 이해상충 관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명시적, 적시적, 효과적인 공지를 통해 고객이나 거래상대방이 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하지 않거나 이해상충 관계를 방지할 수 있기에 충분한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지 아니할 경우 이러한 거래는 허용되지 않는 투기적 자기자본거래로 본다는 것이 볼커 룰이 천명하는 기본 원리이다. 이에 따르면, 은행이 특정 상품을 개발하여 판매하고 이에 부수한 위험을 헷지하기 위하여 자기자본거래를 할 경우 그러한 거래가 고객의 이익과 충돌될 경우 그에 대한 명시적, 적시적, 효과적인 공지를 하지 않거나 이해상충을 방지하기에 충분한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을 경우 그러한 거래는 허용되지 않는 자기자본거래로 보게 된다. 특히, 이해상충 위험이 존재하기 쉬운 시장조성행위의 효과적 규제에 있어 이러한 볼커 룰의 기본원리가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용평가기관인 S&P에 따르면, 볼커 룰의 입법에 따라 미국의 8대 은행이 약 100억불에 상당하는 자기자본거래 이익을 잃게 될 것이라고 한다. 비투기적 거래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므로 그렇다면 손실이 예상되는 100억불은 모두 투기적 자기자본거래에서 비롯된 손실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돈으로 11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이익을 금융업계가 그냥 포기할지 심히 의심스럽다. 이와 관련하여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자본거래 부서는 외관상 없어지겠지만, 실상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디론가 숨어버리는 것이라고.. 오히려 더 규제하기 어려워 질 것이라고..”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누가 알겠는가?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쥔 금융당국이 이를 어떻게 사용하게 될지? 처음 미국 증권거래법에 Rule 10b-5가 제정되었을 때, 어느 누가 Rule 10b-5가 현재와 같은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을까?
도드 프랭크법 제619조는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은행이 자기자본거래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기자본거래(proprietary trading)란 금융사가 자기자본이나 차입금을 활용해 파생상품 등을 포함한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예금이나 대출과 같은 단순한 업무보다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손실 위험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주요 영업전략으로 자리잡았다. (2009. 말 기준 대형은행들의 순 운영수익 거의 전부가 거래수익으로부터 발생하였다고 한다).
문제는 볼커 룰이 자기자본거래 중에서 투기적 성격을 가진 자기자본거래와 비투기적 성격을 가진 자기자본거래를 구분하고, 비투기적 자기자본거래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자기자본거래를 투기적 거래와 비투기적 거래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가? 일견 고위험 고수익의 투기적 목적을 가진 거래와 투기적 목적이 아닌 다른 건전한 목적(유동성 공급 또는 헷지 등)을 가진 거래는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2012. 5. 10. 미국 최대의 은행인 JP 모건이 파생상품거래로 인해 20억불의 손실을 인식했다고 발표했다. 결산 즈음해서 실제 손실은 그 3배가 넘는 62억불로 불어나 있었고 이를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7조원 규모이다. 이른 바 2012년 전 세계 금융가를 발칵 뒤집은 런던고래사건이다. JP 모건이 이처럼 대규모 손실을 낸 배경에는 신용파생상품에의 투자가 자리잡고 있다.
런던고래 또는 볼드모트로 불리는 부르노 익실(Bruno Iksil)이 있던 최고투자운용부서(Chief Investment Office, CIO)는 2008년부터 합성신용포트폴리오(Synthetic Credit Portfolio, SCP)를 구성하여 운용하기 시작하였는데, SCP는 신용부도스왑(Credit Default Swap, CDS)과 같은 신용파생상품에 대한 매수와 매도 포지션을 동시에 취하면서 위험관리를 하는 포트폴리오로 이해될 수 있다. 2008년 40억불 규모로 시작된 SCP는 이익이 나면서 그 규모를 점차 확대하게 되고, 결국 사건이 발생한 2012. 1분기에 이르러서는 1,570억불(170조원 상당)까지 성장하게 된다.
사실 런던고래 사건에서 문제가 된 SCP의 초기 승인서류를 보면 그 주요 목적이 헷지임을 가리키고 있고, JP 모건의 CEO 역시 의회 청문회에서 SCP의 기본 목적은 헷지임을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CP로부터 이익이 발생하면서 부르노 익실을 포함한 CIO의 트레이더들은 SCP의 본래 목적과 상관없이 한 방향에 대하여 대규모 베팅을 감행함으로써 전형적인 투기적 거래의 모습을 보이게 되고, 시장이 베팅한 방향과 다르게 흘러가 결국 대규모 손실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본래 헷지목적에서 시작된 거래가 변질되어 투기적 거래로 바뀌는 사례는 굳이 런던고래 사건을 들지 않더라도 비일비재하다. 개념상으로 볼 때도, 은행이 다양한 금융상품을 포트폴리오화 하여 분산 투자한다고 할 때, 분산 투자를 통해 위험회피를 추구하는 측면에서는 헷지목적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다른 측면에서 분산된 투자 개별적으로는 초과이윤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투기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헷지거래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시장조성을 위한 유동성 공급의 경우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ABUSCUS란 합성부채담보부증권(Synthetic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CDO) 거래에서, 골드만 삭스는 매도 포지션을 취하고자 하는 고객을 위하여 상품을 개발하는 한편 다른 고객에게는 매수 포지션을 취할 것을 권고하고 동시에 자신이 직접 대규모 매도 포지션을 취하여 논란이 된 바 있는데, 당해 거래에서 골드만 삭스는 본래 유동성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즉, 효율적 시장 조성을 위하여 매도자와 매수자 사이를 매개하는 시장조성 행위 역시 쉽게 고수익을 따르는 투기적 거래로 변질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투기적 거래와 비투기적 거래를 구분하는 것은 마치 무지개의 각 색깔이 각 양 극단에서는 구분이 쉬운데 반해 경계에 가까울수록 구분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수년 간 금융당국과 월 스트리트로 대변되는 금융계가 볼커 룰의 최종안을 둘러싸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였던 것도 바로 이와 같이 본질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두 유형의 거래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그리고 그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볼커 룰은 투기적 거래와 비투기적 거래를 구분함에 있어 “중요한 이해상충관계”가 존재하는지 확인할 것을 요구한다. 즉, 은행이 자기자본거래를 함에 있어 고객이나 거래상대방과 중요한 이해상충 관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명시적, 적시적, 효과적인 공지를 통해 고객이나 거래상대방이 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하지 않거나 이해상충 관계를 방지할 수 있기에 충분한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지 아니할 경우 이러한 거래는 허용되지 않는 투기적 자기자본거래로 본다는 것이 볼커 룰이 천명하는 기본 원리이다. 이에 따르면, 은행이 특정 상품을 개발하여 판매하고 이에 부수한 위험을 헷지하기 위하여 자기자본거래를 할 경우 그러한 거래가 고객의 이익과 충돌될 경우 그에 대한 명시적, 적시적, 효과적인 공지를 하지 않거나 이해상충을 방지하기에 충분한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을 경우 그러한 거래는 허용되지 않는 자기자본거래로 보게 된다. 특히, 이해상충 위험이 존재하기 쉬운 시장조성행위의 효과적 규제에 있어 이러한 볼커 룰의 기본원리가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용평가기관인 S&P에 따르면, 볼커 룰의 입법에 따라 미국의 8대 은행이 약 100억불에 상당하는 자기자본거래 이익을 잃게 될 것이라고 한다. 비투기적 거래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므로 그렇다면 손실이 예상되는 100억불은 모두 투기적 자기자본거래에서 비롯된 손실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돈으로 11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이익을 금융업계가 그냥 포기할지 심히 의심스럽다. 이와 관련하여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자본거래 부서는 외관상 없어지겠지만, 실상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디론가 숨어버리는 것이라고.. 오히려 더 규제하기 어려워 질 것이라고..”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누가 알겠는가?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쥔 금융당국이 이를 어떻게 사용하게 될지? 처음 미국 증권거래법에 Rule 10b-5가 제정되었을 때, 어느 누가 Rule 10b-5가 현재와 같은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을까?
* 이 뉴스레터에 실린 글은 법무법인 한누리나 소속 변호사들의 법률의견이 아닙니다. 만약 이와 유사한 사안에 관하여 법률적인 자문이나 조력을 원하시면 법무법인 한누리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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